서류 하나 떼서 내면 되는 일이었다. 달력에는 "수요일 오전"이라고만 적어 두었다. 실제로는 먼저 뗀 서류의 발급일이 오래돼 다시 발급받았고,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날이 하루 끼었고, 양식이 바뀌었다는 말에 처음부터 다시 썼다. 수요일 오전이 다음 주 화요일이 되었다. 이 일이 특별히 운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데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이 계획 오류다.
계획 오류가 정확히 무엇인가
계획 오류는 자기가 할 일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실제보다 적게 잡는 경향을 가리킨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1979년에 이름을 붙인 개념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원인이 '낙관적인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계획을 세울 때 그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단 하나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돌린다. 서류를 뗀다, 낸다, 끝난다. 반려되거나, 대기하거나, 다시 쓰는 장면은 그 시나리오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로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대부분 그쪽이다.
재미있는 비대칭이 하나 있다. 같은 사람이 남의 일정은 곧잘 맞힌다. 동료가 "이거 오늘 안에 끝내요"라고 하면 속으로 '사흘은 걸리겠는데' 싶고, 대개 그 짐작이 맞다. 남의 일을 볼 때는 그 사람이 과거에 비슷한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 일을 볼 때만 그 기준을 버리고 계획서를 본다.
기한이 걸린 서류에 적용해 보면
행정 서류를 준비할 때 나는 '작업 시간'과 '경과 시간'을 다른 칸에 적는 버릇을 들였다. 앞의 서류 건을 예로 들면 내가 손을 움직인 시간은 다 합쳐 40분 남짓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완료까지 흐른 시간은 엿새였다. 40분과 엿새 사이의 간격을 만든 것은 전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단계들, 즉 남의 확인과 남의 회신이었다.
그래서 일정을 잡을 때 던지는 질문을 바꿨다. "이 일 몇 시간 걸리지?"가 아니라 "이 일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단계가 몇 번 들어가지?"다. 발급 한 번, 상급자 결재 한 번, 기관 회신 한 번이면 세 번이다. 각각 최소 하루로 잡으면 사흘이 바닥이고, 그 위에 내 작업 시간을 얹는다. 이렇게 세면 신기하게도 실제와 가까워진다. 회신이 하루 만에 오면 일정이 앞당겨지는 것이지, 계획이 틀린 게 아니다.
돈에도 같은 오류가 있다
이사나 수리, 경조사처럼 목돈이 나가는 일에서도 구조는 같다. 견적서에 적힌 항목만 더해서 예산을 잡고, 견적서에 없던 것들에서 예산이 무너진다. 사다리차, 폐기물 처리, 당일 식비, 예정에 없던 부품 교체. 하나하나는 작은데 합치면 계획의 절반을 흔든다.
여기에 대해서는 '넉넉히 잡아라'라는 조언이 흔하지만, 얼마나 넉넉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지 않아 실행이 안 된다. 대신 내 기록으로 계수를 만드는 편이 낫다. 최근에 예산을 세워 본 일 세 건을 꺼내 추정액과 실제액을 나눠 본다. 100만 원으로 잡았는데 150만 원이 나갔다면 1.5, 80만 원에 120만 원이면 1.5, 200만 원에 260만 원이면 1.3이다. 세 값의 평균은 약 1.43이다. 다음번 견적이 300만 원으로 나오면 300 × 1.43 = 약 429만 원을 예산으로 잡는다.
이 방식이 막연히 넉넉하게 잡는 것보다 나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근거가 남의 통계가 아니라 내 기록이라 스스로 납득이 된다. 둘째, 가족이나 동료에게 설명할 수 있다. "혹시 모르니까 더 잡자"는 설득되지 않지만 "우리가 최근 세 번 다 1.3~1.5배를 썼다"는 설득된다. 시간에도 같은 계수를 따로 구해 두면 쓰임새가 넓다.
계획 오류를 줄이려면 무엇부터 하나
도구는 단출하다. 하나, 비슷한 일을 지난번에 실제로 며칠 걸려 끝냈는지 적어 둔다. 기억은 완료 시점만 남기고 대기 시간을 지우기 때문에, 적어 두지 않으면 다음번에도 같은 자리에서 넘어진다. 둘, 계획을 세울 때 통제 불가능한 단계를 먼저 센다. 셋, 여유분을 일정 맨 끝에 뭉쳐 두지 말고 각 단계 뒤에 조금씩 나눠 붙인다. 끝에 뭉쳐 둔 여유는 앞 단계가 밀리는 순간 전부 소모된다.
덧붙이면, 계획 오류는 판단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지 어떤 사람이 게으르거나 무능하다는 진단이 아니다.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도 자기 일에 대해서는 똑같이 짧게 잡는다. 그러니 일정이 밀렸을 때 스스로를 탓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이번에 실제로 며칠이 걸렸는지를 한 줄 적어 두는 편이 다음번에 훨씬 도움이 된다. 그 한 줄이 쌓이면 그게 곧 자기 데이터가 된다.
개념 출처: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는 Daniel Kahneman과 Amos Tversky가 1979년 논문에서 제시한 판단 편향 개념이다. 본문의 1.5·1.3·1.43, 300만 원과 429만 원 등은 계산 방법을 보이기 위해 필자가 만든 가정 수치이며 특정 조사 결과가 아니다. 글의 작성 시점은 2026년 8월. 이 글은 판단 습관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으로, 특정인의 성격이나 정신건강 상태를 진단하거나 평가하는 내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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